1980년 2월에 米쿡 오하요(고자이마스)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2살반부터 유치원을 다녔으며 7살때 초딩이 되었다. 미쿡초등학교에선 1학년때부터 1년간 무려
4년을 월반해버렸던 전교에 두명밖에 없던 수재였으나 10살때 우리나라에 들어가자마자 국.산.사.자. 4과목 100문제중에서 92문제를 틀리며 순식간에 전교꼴찌... 그때부터
공부를 포기했다.
92년에 어릴때부터 일제의 잔재인 교복을 입히곤 했던 경희대부속초딩을 졸업하고... 압구정동에 있는 과외대마왕 아이들이 많이 모여주시는
(상상을 초월한다) 신구중학교에서 3년을 또 다시 허송세월했다.
그후 95년에 한영외고라는 역시 구린 집단으로 도망쳤다. "좋은 대학가면 니 인생 열나 행복"이라는 선생들과 학부모들의 쌩구라를
실제로 믿는 애들이 97.362%인 고등학교에서... 역시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3년중 2년 362일을
연애와 농구/축구, 기타등등의 취미생활로 보낸 후에 고려대라는 사설학원에
진학했다.
재수를 안하기로 결정한후, 다니게된 사설학원에
2년간 적응하려 초인적인 노력을 했으나 도저히 그 어떤 종류의 애정도 갖는데
실패... 2000년 밑도 끝도 없이 미국이라는 곳으로 도피유학을 갔다. 순전히 US News 학부경영대학 랭킹이라는 완전어이상실의 기준으로 학교를 선정
(도대체 그 찌라시에서 왜 그렇게 끊임없이 구라를 치는지 ㅠㅠ), 경영학이라는 학문같지도
않은 학문을 하려고 인디애나 시골에서 2년을 보냈다.
02년에 졸업. 옥수수밭에서 얻은 뽀록학점을 안은채 코넬법대라는 직업학교로 진학,
1년이면 8개월은 눈이 내려주는 산골짜기에서 3년간 방황했다. 산골짜기를 잠시라도 벗어나기위해 한학기는 빠리 구랍빠의 소르봉대학이라는...
시설 매우 열악한 학교에서, 다른 한학기는 시드니라는 해변가의 학교에서, 교환학생이라는
놀고 먹는 제도를 이용해서 신선놀음했으나, 역시 배운것 하나 없이 2005년에 직업학교에서 졸업이라는 걸 했다.
지금은 (2009년 10월현재) 워싱톤디씨라는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곳에 산다. 나름 인생 처음으로... 좀 "뭔가하며 사는군"하는 느낌도 2달에 0.37번 정도 받으며 대형로펌에서
변호사질중. 졸업후 첫 1년반은 미쿡과 벨기에에서 다국적기업들이 합병해서
더더욱 소비자들의 등을 쳐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그 거대기업들이 길거리 여기저기 싸놓으신 응가를
치워주는 송무를 주로 했으나, 2007년초에... "웬지 좀
더 아시아쪽일을 더 할 수 있을것같아서"라는 순진한 발상과 함께 금융계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하여 지금은 금융변호사라는 아주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지고서 조낸 열심히 살고 있다... 가 아니고 -_- 말도
안되는 돈놓고 돈먹기 놀이, 가진놈 더 가지기 못 가진분 더 못 가지기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복판에
놓여서 어찌할바 모르고 있다. ㅠㅠ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 그게 기업이든 나라이든 - 서로 자기 몫과 돈을 더 가지기 위해서 싸우는 이전투구의 장이므로
ㅠㅠ, 오히려 지금은 최소한 위선따위는 떨지 않는 삶을 보내는 중이다.
좋아하는것: 외국어 배우는거, 유기농음식, 볼록한 엉덩이 (남녀막론하고 열광한다
싫어하는것: 김치, 단체관광, 강요된 애국심, 폭력, 지나친 민족주의, 명바기, 명바기친인척, 명바기측근, 명바기정책 (것도 정책이라 할 수 있다면), 무식한데 무식한줄 모르는거, 남자/여자 지나치게 따지는 거, 동성애 괜히 반대하는거, 배타적으로 기독교 강요하는거, 출신학교로 사람판단하는거, 조선일보, 몰래뒤에서 까대는거, 일 안하고 버는 돈, 사람 많은 곳, 지나친 열등감, 인공조미료, 결혼을 숙제로 생각하는거, 남들처럼 안산다고 뒤쳐지는 것처럼 얘기하는거, 전쟁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전쟁은 다), 명품에 목매다는거







